오랜만에 서울을 갔는데 영등포에서 가장 좋아하던 술집인 돈정포원에 임대문의가 붙어있습니다. 영등포 시장 안에 위치하여 저렴한 안주와 제법 괜찮은 맛, 시장통 분위기가 어우러진 곳이었지요. 처음 데려간 사람에게 '여기가 40년 된 가게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생김새를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위치와 모양새만 봐서는 술꾼 아저씨들만 잔뜩 앉아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젊은 청춘남녀가 앉아있거나 자리를 나길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던 곳입니다. 사실 여기가 레트로 감성은 전혀 아니고 그냥 구닥다리 분위기로 가득 찬 곳이었는데, 또 이게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름의 매력으로 작용했는가 봅니다.
저 역시 이런 분위기가 생각이 나면 찾곤 했는데 매번 자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단 테이블이 몇 개 없었고 장사도 꽤 잘됐거든요. 그래서 주인장께선 바로 맞은편에도 가게에 분점(?) 얻어 영업을 했었습니다. 사진의 저 장소인데 주방은 본점에 있었고 저기는 테이블만 깔아 두었기에 꽤 많은 인원 수용이 가능했습니다. 한창때는 양쪽 가게 모두가 만석일 만큼 성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했던 가게는 아니었습니다. 가령 열 명의 사람을 각각 한 명씩 데려간다 한다면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 둘 셋 정도였는데요, 거부를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가 위생이었습니다. 주방이 매우 좁다 보니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안주들은 필요할 때마다 덜어서 팔았거든요. '위생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냥 누가 보더라도 썩 깨끗하게 보이진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한데 안주가 담긴 식기나 냄비, 조리된 음식의 상태는 깔끔하고 맛도 준수했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지요. 사진으로 보여드리면 참 좋은데... 제가 이 가게에서 여러 번 마셨지만 사진은 한 장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매번 갈 때마다 '오늘은 일단 마시고 사진은 다음에!!!' 하면서 넘겼는데 다음이 없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네요. 이 글을 보시고 관심이 가는 분들은 포털에 검색 한 번 해보시면 사진이 꽤 나오는데 제법 괜찮은 구경 하실 겁니다. 동공 확장이 되든 손사래를 치든 말이지요.
그렇게 돈정포원은 기억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조금 검색을 해보니 김포로 이전하였고 주인장께서 사진도 찍어 올려두셨더군요. 예전 가게는 19XX 년이었는데 이제 20XX 년으로 넘어왔습니다.
디지털의 이점을 살려 확인해보니 이런 자리에 있습니다.
내친김에 조금 더 살펴보니 예전에 있던 가게 간판을 그대로 활용하여 '돈정포원' 네 글자만 더했습니다. 의도하고 여기로 이전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네요.
내부는 아주 깔끔하게 확 바뀌었기에 이제 위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사용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요 차림상은 위와 같은 것 같은데 전에 있다가 사라진 것들도 있고 없다가 생긴 것들도 보입니다. 저는 영등포 시장에 있을 땐 계란말이, 닭한마리, 닭똥집볶음을 주로 시켜먹었는데 다행히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여기로 함께 왔습니다.
그런데 돈정포원같이 시장통에 있는 가게들은 분위기가 가장 훌륭한 안주인데 그것까지는 함께 가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사장님의 손맛은 변하지 않았을 터이니 음식 역시 예전의 그 맛 이겠지만 저는 왠지 김포의 계란말이보다는 영등포의 계란마리에 걸치는 한잔을 더 즐길 것 같습니다. 허나 이제 추억만 또 하나 늘어났으니 저로서는 퍽 아쉬운 일입니다. 오늘은 이 마음을 핑계 삼아 영등포 돈정포원을 함께 갔던 친구를 불러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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