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시내를 지내 내가면으로 가는 길, 여기서 좌회전을 하면 좁은 시골길이 이어진다.>
2020년 5월 중순 무렵, 왠일인지 우리나라에 비가 많이 내렸고 그로인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여 몇년만인지 모를 만큼 깨끗한 서울을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서울이 아름다운 도시였나? 싶을 정도였다.' 다만 사진을 남기지 못하여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날, 맑은 하늘을 기대하며 일어났지만 어느새 하늘은 다시 꾸물꾸물하기 시작하였고 더 짙어지기 전에 뭐라도 보고싶은 마음에 강화도로 향했다. 마침 오늘은 강화도 내가공설시장 오일장(1일 6일)이 서는 날이라 시골 오일장 구경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였다.
하지만 도착해서 보니 무슨 일인지 오일장은 열리지 않았다. 세상을 휩쓰는 전염병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상인들이 있어야 할 곳엔 주차된 차들만 있었다. 처음엔 퍽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내가 살아있는 기간 중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 장이 열리는 광경과 열리지 않는 광경 중 어느 것이 더 희귀한 경험일까 생각해보니 헛걸음을 하는 오늘도 썩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이라는 기간 중에서 1일과 6일은 장이 열리는 특별한 날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1일과 6일 중 장이 열리지 않는다면 더욱 특별한 날이 아닐까 싶다. 물론 특별한 날이고 뭐고 장이 열리면 더 좋았을테니 이 생각은 그냥 자기위로가 아닐까도 싶다.
아무튼 장이 열렸으면 가지고 왔을 이런저런 물건이 들은 봉지 대신 여기저기를 찍은 사진을 올려두려한다.
내가면으로 가는 길. 이제부터는 왕복 이차선 도로가 쭈욱 이어진다.
강화도는 고인돌이 많아서 다니다 보면 고인돌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나 역시 가는 길에 고인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걸 만들 당시, 저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나르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했을까? 그냥 다 때려치고 던져버리고 싶진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고인돌을 지나서 달리는 길, 눈에 잘 띄는 곳에 서있는 방앗간을 만났다. 나는 이런곳을 만나면 이 장소의 과거는 어땠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참 좋다. 다만 내가 하는 대부분의 상상이란 '과거 이 곳엔 지금보다 주민이 많았을것이다'라는 명제를 두고서 지금보다 활기를 띄고 북적거리던 모습을 상상하기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상은 내 마음이니깐 무엇이 어떠랴. 상상은 컴퓨터나 기계로 찍어져 나오는 글씨가 아니라 '수수방아' 손글씨 처럼 내 마음대로, 다소 삐뚤빼뚤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깐.
자연과 가까운 2차선 도로를 지나다 보면 현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읍내라 부르기 적합하다 싶은 지역에 진입하면 내가공설시장이 나온다. 마지막 사진에서 보이는 정면의 검정색 차량의 우측이다.
하지만 물건을 파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차들만 주차되어있다. 오일장인데 다들 어디로 간 것인지. 다행히 버스 정류장이 남아 이 곳이 시장이 맞음을 알려주고 있다.
아쉬운 마음이 여기저기 사진으로 담아본다.
작은 슈퍼, 어릴 떈 어른들이 저런 슈퍼 앞에 앉아 막걸리를 드시는 모습을 보고는 참 먼 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내가 멀고 그 시절의 어른들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동네 세탁소. 세탁소 하면 두 가지 기억이 나는데, 하나는 학교 다니며 교복을 입을 적에 동복 상의 드라이크리닝 맡기기 아까워 더러워질까 아껴 입었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교복을 줄여서 몸에 딱 맞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세탁소에 가서 주인 아저씨에게 세삼한 수선을 부탁하던 기억이다. 특히 바짓단 부분을 좁게 입는 것이 당시의 멋이었는데 너무 작게 줄인 친구들은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을 때 혼자서 잘 벗지 못하기도 했고 벗다가 튿어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세탁소에서 바라본 반대편 모습. 산이있어 참 아름답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공설시장 옆에는 이런 곳이 있는데 건물 벽에 강화도 명소를 전시해두었다.
하지만 난 그런 것 보다는 이런 글씨에 더 관심이 있다. 정감이 있고 편안함이 느껴진다랄까. 우측에 있는 돌 틈과 배관 사이에서 자란 풀들이 더욱 정취를 돋우는 기분이다.
건물 출입구 모습. 건물 밑의 금, 벗겨진 페인트와 문에 붙은 모양이 옛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른 면에서 본 모습.
이 마크는 내가면의 고유의 마크인듯 다른 건물에서도 보인다.
여기에도 있다.
여기에는 없지만
잘 보면 여기에는 있다. 왜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는지 이유를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그보다 멋진 벽화를 주목해야겠지만 말이다.
담쟁이덩굴 같은 것에 덮힌 건물과 벽화와 폐점정리 광고 포스터. 묘하게 분위기가 어울린다.
건너편 집의 벽화다. 내가면에 있는 벽화는 다른 벽화마을의 작품과는 다르게 편안함이 있다. 간혹 도시미화 차원에서 그린 벽화들이 오히려 너무 튀에서 이질감을 연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는 마을과 잘 녹아드는 느낌이다.
온 길을 되돌아서 벽화와 보면 이른 느낌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튀는 느낌의 벽화. 예쁘게 잘 그린 멋진 작품임은 분명한데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좋긴 좋은데 적당하지 않는다고 할까?
다시 돌아와 찍어보는 내가공설시장. 언젠가 다시 오는 날엔 장이 서있는 모습을 봤으면 싶다. 혹여나 시간도 허용된다면 현덕슈퍼 앞에 앉아 장 구경하면서 마시고 내가여인숙에서 묵고 가봐야겠다. 이자카야, 모텔이 주는 감흥과는 분명히 다를테니 말이다.
시장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길은 왔던 길 말고 고려저수지쪽으로 돌아서 가는 것이 볼 것도 많고 좋다. 넓은 호수와 멋진 산도 구경하고 조사님들이 낚시를 하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또 조금 더 걸리더라도 돌아서 가면 이런 시골길도 갈 수 있는데 단단하게 포장이 된 도로와 비교하면 느리고 불편하고 무엇보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길이 주는 부드럽고 편안한 정취가 있다. 어차피 서울인 집에 가려면 포장도로에 진입을 해야 하므로 그 전까지 이런 일탈도 나쁘지 않다.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바람과 자연의 냄새는 이런 곳에서만 느낄 수 있으니깐.
시골길을 나와 큰 도로로 가는 길에 이런 건물이 있는데 참 흥미로운 광경이다. '고려'라는 글자와 파란색 기와지붕이 어울리는데 또 그 아래 분홍 바탕에 노란색 꼬부랑 글씨의 광고판이 눈에 확 띈다. 헌데 이 조화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마치 과거 80-90년대 농촌에 서울물 좀 먹었다 하는 아가씨가 삐딱구두 신고있는 고향에 온 그런 기분이다.
광고판이 삐딱구두 아가씨라 한다면 이 집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상되기 충분한 그런 느낌이다. 저 돌은 누가 언제 어떻게 쌓았을까. 혼자 쌓았을까 아니면 인부를 불러서 '공사'를 하였을까. 아니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쌓았을까. 삐쭉 올라 단단한 네모진 벽 보다 얼기설기한 돌담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인데 상회가 하나 눈에 띈다. 강화고등학교 옆에 있어서인지 '강고상회'라 붙인 이 곳. 내가 만약 저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하교 후 이 곳에서 많은 군것질을 했을 것이다. 아니, 배가 고픈 2교시나 3교시 쉬는시간에 뛰어나와서 재빨리 빵이나 과자 하나 입에 물고 돌아갔을 가능성이 더 크겠다. 나는 그러하였을 것인데 과거의 학생들은, 지금의 학생들은, 그리고 저 가게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이렇게 나는 내가공설시장 오일장 구경은 허탕을 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분명 오늘이 오일장 날인데 어째써 장이 열리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 조금 쉬어가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만에 하나 사람이 없어 이제는 장이 서지 않는다 하면 슬픈 일일테니 말이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천 :: 계원사 방문기 (0) | 2020.05.30 |
---|---|
경기도 이천 :: 관고재래시장 오일장 구경 (0) | 2020.05.27 |
충남 서산 / 서산동부시장 호떡집 (약도 포함?) (0) | 2019.02.18 |
파주 여행 / 백일홍 꽃밭 (2019년 10월, 이제 꽃 없나봐요 ㅠㅠ) (1) | 2018.10.18 |
강원도 원주 / 치악산 참숯가마, 매우 뜨겁습니다. (0) | 2018.05.17 |
댓글